나라의 성


다카토리성
다카토리성의 역사
다카토리성은 1332년에 남조의 호족이었던 오치 구니즈미가 가이부키 산성의 지성으로 축조한 산성입니다. 당초에는 중세 성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키아게 성(간단한 해자와 토루를 갖춘 정도의 성)이었지만, 훗날 도요토미 히데나가의 가신인 혼다 도시히사 등에 의해 본격적인 수리가 이루어져 근세 성곽으로 재탄생하였습니다. 산기슭에서 혼마루까지의 390m에 달하는 고저차는 일본에서 가장 큰 것으로, 오카야마의 빗추 마쓰야마성, 기후의 미노 이와무라성과 함께 일본 3대 산성 중 하나로 꼽힙니다. 성 내의 둘레는 약 30km, 석축 내의 둘레는 약 20km로 추정되는데, 이는 히메지성과 같은 규모에 해당합니다.
다카토리성은 1580년에 오다 노부나가의 명에 의해 한때 폐성되지만, 노부나가의 사후, 쓰쓰이 준케이에 의해 재건되었습니다. 그 이후 혼다 도시히사의 시대를 거쳐, 1640년에 후다이 다이묘(譜代大名) 우에무라 이에마사가 입성한 후에는 우에무라 가문의 거성으로 막부 말기까지 이어졌습니다. 1873년에 폐성되어 지금은 건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약 10m나 되는 높은 석축 등의 유구는 인위적으로 파괴되지 않고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이로 인해 귀중한 성곽 자료로 인정되어 1953년에는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지정 명칭 ‘다카토리성터’). 또한 2006년에는 공익재단법인 일본성곽협회의 ‘일본 100대 명성’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다카토리성 요약 연표】
- 1332년
- 오치 구니즈미에 의해 축성
- 1580년
-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폐성
- 1584년
- 쓰쓰이 준케이에 의해 재건
- 1589년
- 혼다 도시히사에 의해 대규모 수리
- 1640년
- 우에무라 이에마사 입성
- 1873년
- 폐성
- 1953년
- 국가 사적으로 지정
- 2006년
- 일본 100대 명성으로 선정
다카토리성에 관한 에피소드
히메지성과 같은 흰 성곽
다카토리성에는 흰색으로 회반죽칠한 천수각과 망루가 29개동 세워졌습니다. 성하마을에서 보이는 성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부용성(芙蓉城)’이라 불렀으며, ‘동남쪽 다카토리에 눈이 온 것인가 보았더니 눈이 아니라 도사의 성이더라’라고 읊었습니다(도사는 다카토리의 옛 이름). 현재는 그 모습을 상상하는 수밖에 없지만, 아마도 히메지성처럼 흰색으로 이어진 성곽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산에 위치한 히메지성’이라고 생각하면, 그 모습을 상상하기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르기 힘든 성
혼마루로 가는 도중에는 여러 차례 길이 꺾이는 ‘나나마가리’라고 불리는 지점들이 있었고, ‘무거운 짐을 가지고 올라가면 쌀 한 되를 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급한 고개길인 ‘잇쇼자카’가 있어서 다카토리성은 오르기가 대단히 힘든 성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에무라 가문 시대에는 성주의 거처를 니노마루에서 시모야시키로 옮겼고, 성주는 정월 등의 행사가 있는 날에만 가마를 타고 산정상까지 올라갔습니다.
다카토리성 현지 탐방
곳곳의 절경들
나나쓰 우물에서는 혼마루와 니노마루의 높은 석축을 올려다 볼 수 있는데, 석축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은 실로 압권입니다. 다카토리성의 높은 석축이 주는 위압감을 직접 느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구니미야구라 망루터에서는 맑은 날에는 오사카 시내는 물론, 멀리 아카시 해협 대교와 교토 타워까지 볼 수 있으며, 산기슭에서 혼마루까지의 고저차가 일본에서 가장 큰 산성에서만 볼 수 있는 절경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고분의 돌을 재이용한 석축
다카토리성의 석축에는 아스카, 다카토리 지역 고분의 돌들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를 전용석(轉用石)이라고 합니다. 사용된 전용석을 조사한 결과, 아스카시대의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그중에는 회반죽칠한 돌 등도 있습니다. 모서리돌(석축의 모서리각에 사용되는 돌) 등에 전용석이 사용되어 있습니다. 현지에서 이 돌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다카토리성은 어떤 의미?

성하마을과 함께 마을의 상징적 존재
매년 11월에는 ‘다카토리성 축제’가 개최되고 있으며, 화승총 쏘기 시범과 전통의상 행렬 등이 거행됩니다. 또한 매년 3월에 열리는 ‘상가주택의 히나인형 순방’ 행사 때는 도사 가도 주변의 마치야(상가주택)의 처마끝에 각 가정의 히나인형이 장식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기 위해 방문합니다. 이처럼 다카토리성은 성하마을과 함께 마을의 상징적인 존재이며, 지역 주민들의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일본100대 명성’에 선정되었으며, 외국인을 비롯해 하이킹을 즐기러 방문하는 이들도 많아 다카토리성은 사람들의 교류의 장으로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다카토리성 관련 행사·볼거리
다카토리성 관련 행사로는 앞서 언급된 ‘다카토리성 축제’와 ‘상가주택의 히나인형 순방’이 있습니다. 또한 석축에 원래 고분에 사용되었던 석재가 재사용된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다카토리성 주변에는 이치오하카야마 고분, 미야즈카 고분, 요라쿠 고분군, 사다 쓰카묘진 고분 등 많은 고분들이 있습니다. 이치오하카야마 고분에서는 매년 7월에 ‘하카야마 고분 등화회’가 개최됩니다. 요라쿠 고분군은 석실 공개를 포함하여 고분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정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카토리초 사다의 가스가 신사 내에서 발견된 쓰카묘진 고분은 응회암을 다듬은 돌을 벽돌처럼 쌓아 만든 석곽분으로, 피장자는 7세기 후반, 덴무 천황과 지토 천황 사이에 태어난 구사카베 황자(皇子)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분은 다시 매립되었으며, 석곽 모형이 다카토리초 리베르테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