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성


우다마쓰야마성
우다마쓰야마성의 역사
우다마쓰야마성은 14세기 중엽에 우다 3장수 가운데 한 사람인 아키야마에 의해 축성되었습니다. 표고 473m의 산 정상에 위치한 산성으로, 유구를 통해 천수각이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습니다. 일본 동부 세력을 견제하기에 최적인 장소에 있었으며 야마토코리야마성, 다카토리성과 함께 도요토미 정권하에서 야마토국 지배의 요충지였습니다. 단기간에 빈번한 성주의 교체가 이루어졌지만, 다가 일족의 가문이 새겨진 도깨비 기와가 발굴된 것으로 볼 때, 8년간 성주를 역임한 다가 히데타네 시절에 대규모 수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머지않아 도요토미 가문의 다이묘에서 도쿠가와 가문의 다이묘로 성주가 바뀌었고, 후쿠시마 다카하루가 성주였을 때 ‘마쓰야마성’으로 개명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카하루가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 도요토미 측과 내통했다는 의심을 받아 가이에키(무사의 신분을 박탈하고 영지를 몰수하는 처분)되어, 1615년에 성은 파괴되고 성곽은 허물어졌습니다.
지금은 부분적으로 석축이 남아 있는 정도이지만, 최근의 발굴 조사를 통해 혼마루고텐의 구조가 밝혀졌으며 천수각의 구조도 점차 드러나고 있습니다. 중세부터 근세에 걸친 성곽으로 중요한 사적임이 인정되어 2006년에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지정 명칭 ‘우다마쓰야마성터’). 또한 2017년에는 공익재단법인 일본성곽협회의 ‘속 일본 100대 명성’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우다마쓰야마성 요약 연표】
- 14세기 중엽
- 아키야마에 의해 축성
- 1592년
- 다가 히데타네가 성주가 되다
- 1600년
- 후쿠시마 다카하루가 성주가 되다
- 1615년
- 성 파괴, 성곽 철거
- 2006년
- 국가 사적으로 지정
- 2017년
- 속 일본 100대 명성에 선정
우다마쓰야마성에 관한 에피소드
성 파괴, 성곽 철거에 관한 서장이 발견된다
1997년에 우다마쓰야마성의 성곽을 허문 오우미코무로번의 영주인 고보리 엔슈의 자필 서장이 도쿄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내용은 ‘성곽을 허물 인부가 부족한데 어떻게 안 되겠는가?’라는 내용으로, 당시의 성곽 철거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서 대단히 귀중한 서장입니다. 엔슈가 나가하마 출생이기 때문에 서장은 나가하마성 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비밀통로에 관한 전설
우다마쓰야마성의 자락에 가스가 신사가 있는데, 손 씻는 곳 뒤편 석축에는 인공적인 구멍이 있습니다. 이 구멍에 관한 문헌 기록 등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우다마쓰야마성의 천수각에서 이어진 구멍으로, 성주가 유사시에 이용하는 비밀통로”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다마쓰야마성 현지 탐방

천수대에서 바라본 절경
우다마쓰야마성의 천수대에서 바라본 경치는 매우 아름답습니다. 남쪽으로는 요시노·오미네의 산들이, 북쪽으로는 야마토 후지(누카이다케산)가 보입니다. 또한 지금도 남아 있는 성하마을을 한눈에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이곳에 서보면, 이 성을 축성한 아키야마가 야마토국을 지배하는 데 최적의 장소를 선택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또한 2011년에는 ‘오미네 산맥을 조망할 수 있는 우다마쓰야마성터’로써 나라현 경관자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성터로 가는 2가지 루트
우다마쓰야마성터로 가려면 가스가몬문 유적이 있는 길(옛 가도)로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마을조성센터(센겐샤) 뒤쪽에서 올라가는 루트도 정비되어 있습니다. 두 루트 모두 산기슭에서 걸어서 십여 분이면 성터가 있는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각기 다른 루트를 이용하는 것도 재미있을 듯합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우다마쓰야마성은 어떤 의미?
지역의 상징적 존재
과거에는 우다마쓰야마성에서 성하마을 전역을 한눈에 볼 수 있었고, 성하마을 대부분의 장소에서 성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성터만 남아 있지만, 현지의 오우다 지역 주민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사는 지역을 ‘성하마을’로 의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다마쓰야마성은 지역주민에게 상징적 존재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의 초중학생들이 실제로 성터에 올라가 역사를 배우는 향토 학습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