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탐구! 역사문화 자원
고분과 능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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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현은 고분·능묘의 보고
- 나라현에는 고분 시대, 아스카 시대, 나라 시대에 중앙정부가 설치되었던 관계로, 고분과 능묘가 많이 축조되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사쿠라이시와 덴리시에는 가장 초기의 고분군과 야마토 왕권 초기의 대왕 및 호족의 고분이, 그 이후의 정치적 중심이 되는 아스카에는 천황제가 확립된 시대의 능묘가, 나라시 북부의 사키에는 거대한 전방후원분군이 존재합니다. 그야말로, 나라현은 고분과 능묘의 보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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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에 실시된 이시부타이 고분의 주변 조사입니다. 현재 상태로 정비되기 전의 사진으로, 대형 방분인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 고분과 능묘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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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이란 주로 유력자의 무덤으로 3세기 중엽에서 7세기에 걸쳐 축조된, 흙을 대량으로 높게 쌓아올려 만든 봉분이 있는 무덤을 말합니다. 자연 상태의 언덕을 이용하여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평지에 축조하는 경우에는 주구(周溝)를 파내고 그 흙을 쌓아올리는 엄청난 노동력을 요하는 축조물입니다.
반면에 능묘란 고분 중에서도 특히 천황, 황후, 황태후, 태황태후를 매장하는 분묘를 말합니다. 나라현에는 역대 천황 124명 가운데 31명의 능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능묘의 피장자를 특정하는 것을 ‘지조(治定)’라고 하는데(예를 들면, 우네비야마노 우시토라노스미노미사사기를 진무 천황의 능묘라고 특정하는 것), 이 지조는 오래전 에도시대(1688∼1864)부터 행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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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 아래가 하시하카 고분(야마토토토히모모소히메노미코토 무덤)입니다. 그 위에 시부타니 무카이야마 고분(게이코 천황릉), 안돈야마 고분(스진 천황릉), 니시토노즈카 고분(다시라카노히메미코릉) 등, 사쿠라이시에서 덴리시에 걸쳐 위치해 있는 야마토 고분군의 공중 촬영 사진입니다.
- 나라현에 대형 고분이 많은 이유
- 나라현에는 고조노 마루야마 고분(분구 길이 약 310m·가시하라시), 시부타니 무카이야마 고분(분구 길이 300m·덴리시), 하시하카 고분(분구 길이 280m·사쿠라이시) 등, 대형 고분이 많습니다. 나라현에는 고분 시대, 아스카 시대, 나라 시대에 중앙정부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라 분지 일대에는 유력자가 많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대형 고분이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또한 나라는 ‘1000년의 변방’이라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이는 794년에 나라에서 교토로 천도한 이래, 10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는 의미인데, 고분 등의 유적과 관련해서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1000년의 세월 동안, 개발 등으로 인해 파손되는 일이 적었기 때문에 고분 등의 유적이 양호한 형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나라에 대형 고분이 많은 까닭은 이것이 한 가지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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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화로운 부장품과 도굴
- 유력자들의 고분에서는 호화로운 부장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부장품들은 초기에는 곡옥이나 동경 등의 제사용품이 중심이었지만, 점차 철제 무기와 투구 등의 무구가 많아집니다. 이는 피장자가 제사를 관장하는 사람에서 무인으로 변화해 갔음을 보여줍니다. 호화로운 부장품을 노리고 도굴이 행해지기도 했습니다. 나라현에서는 다이쇼 시대에 사키미사사기야마 고분(나라시)에서 도굴 사건이 발생하였고, 부장품들은 골동품 가게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이 사건은 그 당시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가마쿠라 시대에는 히노쿠마 오우치노미사사기(아스카무라)에서 도굴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당시의 조서에 따르면 대리석을 사용한 묘실은 2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금동제의 문과 은제 장골기(藏骨器)의 존재가 확인되었습니다. 사실은 이 조서를 바탕으로, 히노쿠마 오우치노미사사기가 덴무 천황, 지토 천황의 능묘로 지정되었습니다. 전화위복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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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발로부터 보호받은 능묘
- 능묘로 지정되면 궁내청의 관리하에 있게 되어, 개발 행위가 금지됩니다. 또한 원칙적으로 내부로 들어가는 것도, 발굴도 금지되게 됩니다. 이처럼 능묘 지정에는 여러 가지 제한이 뒤따르지만, 이 제한 덕분에 능묘는 고도 경제성장기의 개발 대상에서 제외되어, 오늘날까지 남아 있게 된 것입니다. 또한 능묘에서는 궁내청에 의한 제사가 행해지고 있으며, 진무 천황릉(가시하라시)에는 황족들이 성년을 맞이하거나 했을 때 참배하러 옵니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수목이 무성한 능묘의 경관은, 오랜 역사가 거쳐간 나라현만의 특별한 경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취재원 나라현립 가시하라 고고학연구소
하시모토 히로유키 기획과장
모치다 다이스케 주임연구원